한국과 일본은 주식시장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밸류업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있습니다. 반면,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은 유사한 정부 정책이 거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이 밸류업 정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그 배경과 구조, 그리고 시장 자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봅니다.
미국 자본시장의 구조와 자율성
미국 시장에는 밸류업 정책이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 개입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미국 자본시장의 높은 자율성과 선진화된 시스템에서 비롯됩니다. 미국은 SEC(증권거래위원회)가 기업의 회계, 공시, 투명성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업은 시장 압력에 따라 스스로 주가 관리 및 주주환원 전략을 세웁니다.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경영 효율화 등은 법적 강제가 아니라 주주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미국 상장사들은 매년 수백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 가치 제고의 일환으로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기관투자자와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수행합니다. 이런 시장 구조는 정부의 별도 개입 없이도 기업의 밸류업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는 기반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정부 주도의 정책보다 자본시장의 자정 능력과 투자자 주도 시스템에 더 큰 신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밸류업이 불필요한 시장 메커니즘
미국에서는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밸류업 효과가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이는 시장 메커니즘이 밸류업 기능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자산 대비 저평가되면, 행동주의 투자자나 헤지펀드가 개입해 경영 개선을 요구하고, 공개적으로 경영권 분쟁까지 벌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이나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낮은 PBR, 비효율적인 자산 운영을 하는 기업에 지분을 확보하고, 이사회 구성 변경, 자사주 매입, 사업 매각 등 구체적인 개선 요구를 해왔습니다. 이런 압박은 경영진에게 실질적인 변화의 동기를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집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미국 기업들이 장기적인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중시한다는 점입니다. 단기 주가 부양보다는 ROE(자기자본이익률), 매출 성장률, EPS(주당순이익) 개선을 통한 실질 가치 향상이 중시되며, 이는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정부 주도의 밸류업 정책이 오히려 불필요하게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책 개입이 최소화된 것입니다.
한국·일본과의 비교: 시스템이 만든 차이
한국과 일본의 밸류업 정책은 정부의 개입 없이는 시장 구조상 변화가 어렵기 때문에 등장한 모델입니다. 한국은 낮은 배당성향, 불투명한 지배구조, 외국인 투자자 감소 등으로 인해 정책 개입형 구조를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역시 장기 경기 침체와 기업들의 보수적인 자금 운용 태도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적 권고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시장 자율성과 견제 장치가 이미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밸류업 정책을 별도로 마련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PBR 1 미만 기업에 개입하기보다는,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스스로 판단하고 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미국 시장은 정책이 아닌 투자자의 행위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정착돼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미국 시장은 정책 의존도가 낮아 보다 예측 가능하고, 자율성 높은 투자 환경을 제공합니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은 정책 변화에 따라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리스크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국 시장이 밸류업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것은 방치가 아니라,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는 각국의 시장 구조 차이를 이해하고, 정책 중심의 한국·일본과 자율 중심의 미국을 구분해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